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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e & Interior/Story

코리빙 공간 (가변 평면, 공용 공간, 내구성 스펙)

by 일라 ILAH 2026. 7. 27.

새 학기가 시작되거나 타지에서 단기 프로젝트를 맡게 됐을 때, 6개월짜리 고시원 계약을 하면서 "이게 진짜 내 집인가"라는 기분을 느껴본 적 있으실 겁니다. 저도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니 단기 임시 거처를 써본 경험이 있고, 그때마다 늘 아쉬웠던 건 공간이 아니라 공간이 저를 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최근 유럽 건축계에서 바로 그 질문—짧게 머무는 사람을 위한 집은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가—에 정면으로 답하는 프로젝트들이 나오고 있어 오늘 한번 뜯어보겠습니다.

가변 평면, 파티션 하나로 집의 경계를 다시 긋다

바르셀로나의 살바46(Salva46)을 처음 봤을 때, 예상 밖이었습니다. 65㎡ 안에 두 개의 독립 사적 유닛과 공용 주방, 다이닝, 소셜 공간을 다 집어넣으면서도 답답함이 없는 건, 슬라이딩 파티션 덕분입니다.

여기서 슬라이딩 파티션(Sliding Partition)이란 벽처럼 고정된 칸막이가 아니라 레일 위를 움직이며 열리고 닫히는 가동형 간막이를 말합니다. 낮에는 개방해서 사적 유닛을 공용 영역으로 합치고, 밤에는 닫아 완전한 개인 공간으로 돌아오는 방식입니다. 평면 면적은 동일하지만, 거주자가 직접 경계를 조작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스튜디오 아파트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또 층고를 활용한 메자닌(Mezzanine)이 인상적입니다. 메자닌이란 층과 층 사이의 중간 높이에 덧댄 소형 플로어로, 침대 상부에 독서나 작업을 위한 별도 공간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전유 면적(전용 면적)을 수평으로 늘리는 대신 수직으로 압축하여 심리적 공간감을 확보하는 전략인데, 제가 소형 스튜디오 리모델링을 할 때도 자주 권유하는 방법이라 더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만 가변 평면은 낭만적으로 보이는 만큼 현실적 하자도 있습니다. 슬라이딩 파티션은 레일 유격(Gap in Rail Hardware)이 시공 후 시간이 지나면서 벌어지면 개폐 불량이나 소음이 생깁니다. 거주자가 직접 문을 닫지 않으면 프라이버시가 유지되지 않는 구조적 한계도 있고요. 제 경험상 이런 가동형 하드웨어는 설계 단계에서부터 허용 공차(Tolerance)를 엄격히 잡아두지 않으면 입주 후 6개월이면 민원이 쌓이기 시작합니다.

공용 공간이 집의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전제

리스본의 울리세이아(Ulisseia)는 접근 방식이 조금 다릅니다. 개조된 산업 창고를 배경으로, 사적 객실들을 창고 구조 축 방향으로 배치하고, 입구에서 멀어질수록 원형 공용 공간을 연쇄적으로 이어갔습니다.

이 건물의 핵심은 주거와 상업·문화 기능 사이를 전환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코리빙은 늘 '주거' 상태여야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울리세이아는 이벤트나 팝업 행사가 열릴 때 사적 객실을 완전히 닫고 공용 원형 공간만 독립적으로 운영합니다. 건물이 스위치처럼 켜지고 꺼지는 구조입니다.

흥미로운 건 가장 사적인 객실에도 천창(Skylight)을 두었다는 점입니다. 천창이란 지붕이나 상부 구조물에 설치하는 채광용 개구부로, 원래 창고의 골조가 객실 안에서도 시야에 들어오도록 설계된 것입니다. 개인실에 있어도 건물 전체의 맥락과 단절되지 않는다는 느낌, 쉽게 말해 '나는 지금 이 건물의 일부다'라는 감각을 유지시켜 주는 장치입니다.

저는 이 전략이 꽤 영리하다고 봅니다. 단기 거주자에게 건물 전체가 영구적인 자기 집임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전제를 솔직하게 인정한 설계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벤트가 예약되면 일주일씩 거주자의 공용 공간이 통째로 막힌다는 점은 실제 입주자 입장에서 꽤 큰 불편입니다. 운영 프로세스와 건축이 함께 설계되지 않으면 이 모델은 살림집이 아니라 단순한 수익형 공간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내구성 스펙 없이는 트렌드도 없다

더즌 도어스(Dozen Doors)는 마드리드 테투안(Tetuán) 지구의 단독주택을 개조해 해외에서 온 석사 학위 과정 학생 12명이 1년간 거주하는 코리빙으로 만든 프로젝트입니다. 개인실은 약 10㎡, 즉 3평 수준으로 침대, 욕실, 책상만 겨우 들어갑니다. 요리도 손님도 모두 공용 공간으로 내보내는 방식입니다.

건축이 "함께 살아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피할 수 없도록 만드는 구조입니다. 제가 직접 써봤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런 공간을 설계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 접근이 단순히 낭만적인 아이디어가 아님을 압니다. 공동체는 공간이 강제하지 않으면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걸 현장에서 오래 봐왔거든요.

다만 이 지점에서 저는 디자이너로서 트렌드의 뒷면을 반드시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2명의 손이 매일 닿는 공용 주방과 거실의 마감재 스펙은 일반 주거와 같을 수 없습니다. 세라믹 슬랩(Ceramic Slab)이나 포세린 타일(Porcelain Tile) 같은 고내구성 소재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세라믹 슬랩이란 대형 규격으로 생산된 고밀도 세라믹 판재로, 흡수율이 거의 0%에 가까워 오염이나 마모에 강한 마감재입니다. 포세린 타일도 소성 온도가 일반 도기타일보다 높아 표면 경도와 내마모성이 월등합니다.

카운터 상판이나 수납장 전면에 HPL(High Pressure Laminate) 마감재를 쓰는 것도 필수입니다. HPL이란 여러 겹의 종이와 수지를 고온·고압으로 압착한 적층 소재로, 충격과 스크래치에 강하고 습기에도 잘 견딥니다. 아름다운 가변 평면을 설계했더라도 공용 마감이 1년을 못 버티면, 그 공간은 거주자에게 심리적 안도감이 아니라 불안감을 줍니다.

국내에서도 1인 가구와 단기 임시 거주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2023년 기준 국내 1인 가구 비율은 전체 가구의 34.5%로 집계되었으며, 이 수치는 2050년에는 39.6%에 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출처: 통계청). 이 흐름 안에서 코리빙은 선택이 아니라 점점 현실적인 주거 옵션이 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가 코리빙에서 절대 놓치면 안 되는 것

세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공통점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살바46: 슬라이딩 파티션으로 매일 사적/공용 경계를 거주자가 직접 재설정
  • 울리세이아: 건물 기능 자체를 주거/상업으로 전환 가능하게 설계
  • 더즌 도어스: 개인실을 극소화해 공용 공간 의존도를 구조적으로 높임

저는 이 세 가지 접근이 각각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질문에 답하고 있다고 봅니다. "정해진 기간만 머무는 사람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다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실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건 완벽한 방음 디테일입니다. 10㎡짜리 개인실에서 옆방 소리가 그대로 들린다면, 아무리 공동체 설계가 잘 되어 있어도 거주자는 결국 그 공간을 떠나고 싶어집니다. 차음 성능(STC, Sound Transmission Class)은 코리빙 설계에서 가장 먼저 확보해야 하는 기본기입니다. STC란 벽이나 바닥이 소리를 얼마나 차단하는지를 수치로 나타내는 지표로, 수치가 높을수록 소음 차단 성능이 우수합니다.

유럽건축가협회(ACE)는 주거 공간의 품질 기준에서 음향 환경, 일조, 자연 환기를 거주자 웰빙의 핵심 요소로 명시하고 있습니다(출처: ACE - Architects' Council of Europe). 코리빙이 아무리 유연하게 설계되어도 이 기본 조건을 채우지 못하면 '임시 집'이 아니라 그냥 '불편한 공간'이 될 뿐입니다.

디자이너의 진짜 역량은 트렌드를 복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임시적인 삶을 살아가는 거주자일지라도 머무는 순간만큼은 심리적으로 단단하게 지지받을 수 있도록, 가변 하드웨어 공차 통제와 내구성 자재 매핑, 방음 디테일이라는 기본기를 도면 위에서 끝까지 사수하는 데 있습니다. 코리빙을 설계할 기회가 생긴다면, 이 세 프로젝트를 레퍼런스로 삼되 그 낭만 뒤의 공학적 현실을 반드시 함께 들여다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archdaily.com/1092401/co-living-rethinking-home-for-temporary-belonging-and-mobile-lifestyles?ad_campaign=normal-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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