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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e & Interior/Story

북유럽 인테리어 (에이징, 모듈성, 지속가능성)

by 일라 ILAH 2026. 8. 15.

공간을 완성하고 나서 1~2년이 지났을 때, 처음과 달리 어딘가 촌스럽다는 느낌이 든 적 있으셨나요. 저는 프로젝트를 마친 뒤 클라이언트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정말 뜨끔했습니다. 북유럽 디자인은 바로 그 지점에서 다른 접근을 택합니다. 트렌드를 따라가는 대신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 공간, 그 비결이 어디에 있는지 제 경험을 바탕으로 북유럽 인테리어에 대해 짚어보겠습니다.

에이징: 낡는 것과 나이 드는 것은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상업 공간은 3~5년 주기로 리뉴얼이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호텔이나 레스토랑처럼 하루에도 수백 명이 드나드는 호스피탈리티(hospitality) 공간, 즉 사람을 맞이하고 머물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접객 공간은 특히나 마모가 빠릅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어차피 교체할 거니까 저렴한 소재로 채우자"는 방향으로 기획하는 경우를 꽤 자주 봐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판단이 장기적으로 훨씬 더 많은 비용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만, 오크 원목이나 새들 레더(saddle leather)로 마감된 가구는 3년이 지나도 사용감이 '낡음'이 아니라 '깊이'로 읽힙니다. 새들 레더란 무두질한 통가죽을 말하는데, 쓸수록 표면에 독특한 광택과 결이 쌓여 오히려 더 고급스러워지는 소재입니다.

뵈르게 모겐센(Børge Mogensen)이 1958년에 설계한 '스패니시 체어(Spanish Chair)'가 대표적입니다. 이 의자는 스타일보다 소재와 비율에만 의지해 형태를 덜어냈고, 그 결과 지금도 어떤 공간에 놓아도 어색함이 없습니다. 제가 주거 프로젝트에서 이 의자를 레퍼런스로 삼아 비슷한 원목·가죽 조합을 제안했을 때, 클라이언트가 5년 후에 "아직도 질리지 않는다"고 연락해 온 적이 있었습니다. 에이징(aging), 즉 시간의 흐름을 품위 있게 받아내는 것이 디자인의 일부라는 걸 그때 다시 실감했습니다.

모듈성: 공간이 시대를 따라가게 하는 구조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의 '시리즈 7(Series 7) 체어'는 1955년 프리츠 한센(Fritz Hansen)을 위해 디자인되었습니다. 성형 합판을 얇게 구부려 만든 이 의자의 절제된 실루엣은 70년이 넘도록 호텔, 오피스, 주거 공간 모두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가구는 시대에 따라 교체가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가구 자체가 '적응력'을 갖추고 있으면 교체 주기를 크게 늘릴 수 있습니다.

피터 J. 라센(Peter J. Lassen)이 설계한 '몬타나(Montana)' 시스템은 이 적응력을 구조적으로 구현한 사례입니다. 몬타나는 모듈러 시스템(modular system) 방식으로 설계된 수납 가구입니다. 모듈러 시스템이란 동일한 단위 모듈을 조합해 다양한 형태를 구성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공간이나 용도가 바뀌어도 기존 부품을 재조합해 쓸 수 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교체가 아니라 변화를 수용하는 구조인 셈입니다.

제가 오피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비슷한 모듈형 가구를 도입한 적이 있는데, 클라이언트가 2년 후 팀 규모가 커지면서 레이아웃을 바꿔야 했을 때 새로 구매 없이 기존 가구만 재배치해 해결했습니다. 그때 "처음부터 이렇게 기획할 걸 그랬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였습니다. 호스피탈리티 공간이라면 이 필요성이 더욱 절실합니다. 시즌마다 콘셉트가 바뀌어야 하는 레스토랑이나 다목적으로 운영되는 호텔 로비에서, 유연하게 재구성 가능한 가구는 장기적으로 훨씬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북유럽 디자인이 오랜 시간 상업 공간에서 살아남은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인체공학(ergonomics) 기반 설계로 사용자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는 동선 확보
  • 모듈러 시스템으로 공간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 가능
  • 원목·가죽 등 내추럴 소재의 에이징 특성으로 교체 주기 연장
  • 조명 설계를 통한 분위기 연출로 공간 개성 유지

인체공학이란 인간의 신체 구조와 움직임을 분석해 도구나 공간을 설계하는 학문입니다. 카레 클린트(Kaare Klint)는 1930년대에 이미 이 원칙을 가구 설계에 적용해, 스타일이 아닌 인체 비율에서 출발하는 방법론을 제시했습니다. 그 철학이 지금까지 북유럽 가구 전반의 뼈대가 되고 있다는 점은, 제가 설계 과정에서 북유럽 가구를 레퍼런스로 삼을 때마다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지속가능성: 새 소재보다 수리가 먼저입니다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단어가 인테리어 업계에서 자주 들리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지속가능성이란 환경·경제·사회적 측면에서 미래 세대의 필요를 해치지 않으면서 현재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식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북유럽에서는 이게 트렌드가 아니라 오래된 생활 문화에 가깝습니다.

스웨덴 가구 제조사 겜라(Gemla)는 수십 년간 사용된 의자의 수리와 리퍼브(refurb) 서비스를 꾸준히 제공하고 있습니다. 리퍼브란 오래되거나 손상된 제품을 수리·복원하여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겜라의 접근법은 "더 많이 만들어 팔겠다"가 아니라 "더 오래 쓸 수 있도록 돕겠다"는 철학에서 출발합니다. 전 세계 인테리어 시장에서 탄소 발자국 감축이 주요 의제로 떠오르는 가운데, 이런 모델이 갖는 의미는 작지 않습니다(출처: Architonic).

빛의 설계도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루이스 폴센(Louis Poulsen)은 조명을 단순한 밝기 도구가 아니라 공간의 분위기를 만드는 하나의 '물질'로 다룹니다. 조도(照度, illuminance)란 단위 면적당 빛이 닿는 양을 나타내는 지표인데, 루이스 폴센의 설계 철학은 단순히 조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빛의 방향과 확산 방식을 통해 따뜻함과 친밀감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합니다. 제가 공간에 북유럽 조명을 배치할 때마다 느끼는 건, 같은 전구라도 어디에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공간의 온도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유럽의 지속가능한 건축·인테리어 동향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상업 공간에서 가구 수명을 두 배로 늘릴 경우 생애 주기 탄소 배출량이 평균 30~40%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European Environment Agency). 단순히 친환경 소재를 쓰는 것보다 오래 쓰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데이터입니다. 북유럽 디자인이 수십 년 전부터 실천해온 방식이 지금의 지속가능성 논의와 정확하게 맞닿아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결국 북유럽 인테리어의 핵심은 특정 마감재 톤이나 특유의 미니멀한 분위기를 흉내 내는 데 있지 않습니다. 저는 앞으로 공간을 기획할 때, 이 공간이 5년 후에 어떻게 나이 들 것인지를 먼저 물어보는 것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호스피탈리티든 주거든, 트렌드를 좇는 대신 시간을 견디는 설계를 고민하는 분들이라면 북유럽 디자인의 철학을 단순한 스타일이 아닌 방법론으로 다시 들여다보실 것을 권합니다.


참고: https://www.architonic.com/en/s/a-different-timescale:-what-hospitality-owes-to-nordic-design/20361208